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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었던 수확기, 그 속에서 배운 단단함

by 519kiki 2025. 5. 27.

오늘은 상추 마지막 수확을 마쳤다. 한 고랑 한 고랑을 돌아가며, 손끝으로 잎을 만지고, 수확이 끝난 뿌리를 뽑아내는 순간, 문득 2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내게 농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고되고 힘들었던 수확기. 그해 여름은 평년보다 더웠고, 비는 적었으며, 사람 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태풍은 남쪽에서 연거푸 올라왔고, 땅은 갈라지고, 하우스는 지쳤고, 나 역시 육체도 마음도 이미 바닥이었다. 하지만 작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잎이 질어지고, 오히려 병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나는 정말 한계를 넘어섰다.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밤 10시가 넘어 비닐하우스 불을 끌 때까지 손에서 칼과 바구니가 떨어지지 않았다.

갈색-밀-밭-사진

 

가장 힘들었던 건 단순한 노동의 강도가 아니었다. ‘이걸 다 끝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과연 이 고생이 돌아올까?’라는 두려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몰려왔다. 수확한 작물을 씻고, 포장하고, 상자에 담고, 배송까지 마치고 나면 손은 퉁퉁 붓고 손톱 밑은 새까매졌지만, 마음속은 더 묵직했다. 특히 그해엔 예상보다 작황이 좋지 않았고, 가격도 들쭉날쭉해 ‘고생한 만큼 결과가 따라줄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주변 농가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람을 못 구해 수확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병해에 작물을 통째로 갈아엎었다. 그때 나는 매일같이 되뇌었다. “버티자, 하루만 더 버티자.” 농사는 가끔 하루의 연장이 전체를 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한 날을 어떻게든 버텼고, 다시 그 다음 날을 또 버텼다. 그 당시의 수확기는 전쟁 같았다. 해는 머리 위를 내리꽂고, 장갑 속 손은 땀에 젖어 미끄러웠고, 무릎은 벌써 까져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은 45도가 넘었고, 한 시간만 안에 있어도 머리가 아찔했다. 하지만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양을 따야 했고, 배송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했다. 게다가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유로 선별 기준은 더 까다로웠다. 색, 크기, 잎 상태, 손상 유무까지. 내 손을 거쳐 나가는 모든 작물이 누군가의 식탁에 오른다는 걸 생각하면, 단 한 장의 상추도 허투루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하게, 더 빠르게, 더 집중해서 일해야 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기준을 세웠고, 그 기준을 매일 넘기 위해 몸을 혹사했다. 그 무렵엔 가끔 거울을 보기도 싫었다. 햇볕에 탄 얼굴, 부은 눈, 붉어진 손등. 농사를 짓기 전 도시에서 일하던 시절과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스스로도 놀랐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았다. 내 삶이 지금 눈에 보이게 남겨지고 있다는 느낌. 내 손과 얼굴에, 시간과 노동이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다는 자부심. 그건 피곤함을 넘어서 나를 붙잡아주는 작은 자존감이었다. 누군가는 그 여름을 지옥이라 표현하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단단함’을 배웠다. 단단함이란 참는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해내겠다는 책임감, 결과를 떠나 한 사람의 농부로서 하루를 다 채우는 자세. 그것이 진짜 단단함이라는 걸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견뎌낸 여름 수확은,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안겨주었다. 시장에 나간 작물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고객들로부터 “이렇게 고소한 상추는 처음이에요”, “이 바질은 향이 미쳤어요” 같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몇 줄의 메시지가, 그 모든 고됨을 단숨에 위로했다. 특히 단골 한 분이 보내준 사진 속엔, 내가 딴 작물로 차려진 저녁 식탁이 담겨 있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고 있는 모습.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울었다. 이 모든 고생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었구나. 내 손으로 키운 작물이 사람을 웃게 하고, 식탁을 채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여름을 맞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은 그해보다 조금 더 농사에 익숙해졌고, 조금 더 체계도 갖춰졌다. 사람도 구했고, 시스템도 개선했다. 하지만 그 여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간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가장 ‘살아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땀이 쏟아지고, 몸이 무너져도, 마음만큼은 번쩍 깨어 있었던 그 수확기. 농부로서의 내가 단련된 시간.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오늘 수확을 마치고 하우스 문을 닫으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앞으로 또 어떤 혹독한 계절이 오든, 나는 그 여름을 견딘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단단함은 앞으로도 내 농사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