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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농장에서 마주친 ‘예상치 못한 생명들’ — 들꽃, 곤충, 새 이야기

by 519kiki 2025. 5. 22.

오늘 아침도 평소처럼 농장을 돌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단순했다. 눈앞에 예쁘장한 들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추 고랑 사이, 아무도 심지 않은 그 자리에 홀로 피어난 작은 노란꽃. 그 존재가 어찌나 반가운지, 나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 그 꽃을 바라봤다. 이름도 모른다. 다만 매일 농장을 돌며 수백 번 지나쳤던 땅 위에,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이 피어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나는 분명 농사를 짓는 사람이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확을 하지만, 이렇게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생명이 스스로 자라나 내 앞에 나타날 때면,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자연의 시간이 이곳에서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 순간 나는 농부이기 이전에, 자연 속의 조용한 손님이 된다.

녹색-농장에-앉아-있는-남자

 

사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정리된 농장’을 꿈꿨다. 잡초는 없고, 작물은 가지런하며, 해충은 완벽히 차단되는 이상적인 풍경. 그래서 처음 몇 달간은 땅 위에 있는 이름 모를 풀과 곤충들을 모두 ‘불청객’이라 생각했다. 호미로 뽑아내고, 방제망을 치고,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소독을 고민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오히려 생명이 사라졌다는 공허함이 남았다. 너무 말끔한 밭, 너무 조용한 하우스,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번, 일부러 풀을 조금 남겨뒀다. 바질 밭 한켠의 둔덕에,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시간이 지나자 들꽃이 피었고, 벌이 날아들었고, 무당벌레가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알게 됐다. 이 땅에서 ‘계획되지 않은 생명’은 오히려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나는 또 하나의 순간은 여름 장마철이었다. 몇 날 며칠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하우스 뒤편에 설치해 둔 빗물통 위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비를 맞으며 깃털을 털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 모습이 이상하게 고요했다. 나는 일부러 다가가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새는 잠시 내 눈을 보더니, 곧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은 자리에 또다시 그 새가 앉아 있었다. 내가 그를 알아보고, 그도 나를 알아봤을까. 아니면 단지 빗물통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었을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하우스 뒤편의 그 자리만은 비워두기로 했다. 그 새가 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농장은 그렇게 어느 순간, 나만의 공간이 아닌 ‘함께 사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곤충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자주 마주치는 건 사마귀였다. 처음엔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사마귀가 있는 자리는 되레 반갑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해충이 많다는 뜻이고, 사마귀는 스스로 방제를 해주는 천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친구를 '직원'이라고 부른다. 방울토마토 줄기 위에 올라앉아 천천히 목을 돌리는 모습,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잎 사이를 조심조심 걷는 모습. 그런 순간을 볼 때마다 나는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손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어떤 스마트팜 시스템보다도 더 치밀하고, 정확하고, 유연하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자연적’이라는 말로 쉽게 퉁치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수천만 년의 진화와 생존 전략이 숨어 있다. 그걸 매일 농장에서 마주하는 나는, 매일같이 ‘배우고’ 있다. 들꽃도 마찬가지다. 상추밭 옆두렁에서 자라는 분홍색과 보라색의 야생화들. 이름을 모를 때는 ‘잡초’였지만, 이름을 찾아보고 나면 갑자기 애틋해진다. 어느 날은 스마트폰으로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식물 도감 앱에 검색해봤다. 까실까실한 줄기 하나에도 이름이 있었고, 뜻이 있었다. 어떤 건 약초로도 쓰이고, 어떤 건 토양을 정화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걸 알고 나니 함부로 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부 구역에는 아예 ‘들풀 보전구역’이라는 팻말을 달아두었다. 소비자가 보기에 어수선해 보일지 몰라도, 그곳은 내 농장 생태계의 균형을 지켜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생명이 살아 있다는 건, 계획되지 않은 존재들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그게 진짜 풍요라는 걸, 나는 이 들꽃들을 통해 배웠다.

 

내가 농장에서 마주친 생명들은 대부분 작물이 아니었다. 들꽃, 곤충, 새, 바람, 가끔 길을 잃고 들어온 고양이까지. 이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나의 노동을 곁에서 지켜봐줬다. 때로는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방향을 바꿔주었고, 때로는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그들 덕분에 농사를 단지 수익이나 생산의 행위로 보지 않게 되었다. 농사는 생명과 생명이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이고, 작물만이 아니라 그 땅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농장을 돌다가 문득 새소리에 멈춰 설 수 있는 마음, 작물 외의 생명에도 시선을 둘 수 있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진짜 농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작물만 본 것이 아니다. 들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사마귀를 따라가며 웃었고, 저 멀리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눈으로 배웅했다. 농장에서 보내는 매일은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생명을 마주한다. 그 생명들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건다. “여기도 살아 있어요.” 나는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것이 농부의 감각이고, 인간의 감성이다. 작물이 자라지 않는 틈 사이, 비닐하우스 바깥의 작은 공간들, 사람이 관심을 주지 않는 그 자리에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농장’이 숨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그 들꽃을 다시 보러 갈 것이다. 어쩌면 오늘보다 더 많은 생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