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하늘을 바라봤다. 뿌연 새벽빛 사이로 별 하나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도 하늘을 보지 않은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아니 농부라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하늘과 땅, 바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살 때는 날씨가 변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우산을 쓰거나 코트를 꺼내 입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짓게 된 이후로, 나는 자연의 작은 변화를 더 예민하게 느끼고 읽어내게 되었다. 이슬이 많은 날은 비가 올 것 같고, 바람이 거칠어지면 다음 날 기온이 내려갈 거라는 걸 몸이 먼저 안다. 오늘은 채소 밭에 나가야 한다. 특히 새로 심은 루꼴라와 청경채가 밤새 어떤 상태였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확 밀려오는 흙냄새가 반갑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매일 이렇게 자연의 숨결을 읽는 일이다. 흙을 살펴보고, 잎사귀를 만져보고,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해독한다. 어떤 날은 토양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걸 느낀다. 그래서 물을 주는 게 아니라, 땅을 갈아주거나 통풍을 조절한다. 어떤 날은 상추잎의 색이 평소보다 연해진 걸 보고, 햇빛이 부족했음을 알게 된다. 자연은 말로 설명하지 않지만, 대신 온몸으로 신호를 보낸다. 농부는 그 신호를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이슬이 잔뜩 맺혀 있다. 손으로 잎을 쓸어내리면 차가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물방울 사이로 드러나는 건강한 초록빛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어젯밤 기온이 꽤 내려갔지만 무사히 버텨준 모양이다. 매일같이 이런 작은 안도와 긴장을 반복한다. 농사를 지으며 가장 크게 배운 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없다는 진리다. 아무리 좋은 설비와 기술이 있어도, 때로는 바람 한 번, 비 한 번에 작물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자연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농사는 결국 대결이 아니라 조율이다.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듯, 자연의 리듬에 몸을 싣는 일이다. 토양 수분을 체크하고, 잎의 상태를 기록하고, 하우스 내 온습도계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나는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땅은 내게 가끔 짜증을 낸다. ‘물을 너무 많이 줬어.’ 또는 ‘지금은 비료가 필요 없어.’ 그렇게 타박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성하고 조심스레 다시 손을 뻗는다. 자연은 가르치되 꾸짖지 않는다. 실패를 경험하게 할 뿐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금방 알 수 있다. 모종을 촘촘히 심으면 통풍이 나빠지고, 조급하게 거름을 주면 뿌리가 약해진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매일 자연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기다리는 일이다. 어제 심은 상추가 오늘도 조용히 말한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오늘은 오후부터 바람이 거세진다는 예보가 있다. 하우스 출입문을 단단히 고정하고, 약한 모종 주위에 지지대를 세운다. 일기예보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 냄새를 맡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바람이 바뀌는 냄새, 습기가 변하는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자연을 읽는 감각이 조금씩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농사짓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은 감각에 의존한다. 땅이 주는 촉감을 믿고, 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하늘의 무게를 느끼면서 내일을 준비한다. 이런 날들은 종종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도시에 있을 때, 나는 생산과 소비만을 따졌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많이. 하지만 땅 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세상의 속도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농사는 성급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씨를 뿌리면 바로 내일 거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기다림, 최소한의 인내, 그리고 무수한 실패를 품어야만 겨우 하나의 열매를 손에 쥘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은 나에게 가장 엄격한 스승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매일 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일이다. 해가 중천에 떴다. 작은 새들이 하우스 지붕 위를 가로지른다. 땅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벌레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 그리고 조용히 자라고 있는 작물들. 모두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인간만이 유독 조급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듯 다른 밭을 걸으며, 나는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듬어진다. 더 부드럽게, 더 끈기 있게, 더 진심으로. 오늘 심은 상추, 물을 준 루꼴라, 솎아낸 청경채, 가만히 바라본 하늘.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대화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아무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다. 그리고 언젠가는 말할 수 없이 깊은 뿌리가 되어 나를 지탱해줄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매일 자연과 대화하는 일이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햇살이 따갑든, 그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 마음을 다듬고, 내 하루를 다져가는 일이다. 오늘도 자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었다. 나도 말없이, 흙을 매만지고 잎을 어루만지고 바람을 느끼며 답했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더 잘 듣자. 더 잘 느끼자. 더 잘 살아내자. 내일도 자연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