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참 많이 변했다.’ 얼굴에 햇볕에 탄 자국이 선명하고, 손은 거칠고 단단해졌고, 다리 근육은 매일 밭을 오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두꺼워졌다. 농사를 짓기 전엔 책상 앞에 앉아 하루 대부분을 보내던 사람이었다. 마우스를 쥔 오른손만 유난히 발달했고, 허리는 늘 굽어 있었으며, 어깨는 항상 뻐근했다. 운동도 한다고는 했지만 헬스장 런닝머신과 실내 자전거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마다 허리를 펴고, 한 손에 삽을 쥐고, 하루 종일 땀 흘리며 땅을 걷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언어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살이 빠졌다’가 아니라, ‘살아진다’는 느낌. 내 몸이 제 기능을 되찾고, 일하는 방식에 맞게 스스로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처음엔 힘들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면 밤마다 다리가 쑤셨고, 손목이 욱신거렸다. 등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무릎은 서서히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확철엔 물류 작업까지 겹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곤 했다. 그때는 오히려 ‘몸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나자, 몸이 스스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는 자세가 자연스러워졌고, 삽을 드는 근육이 생겼고, 땀을 흘리는 속도와 양까지 조절되는 걸 느꼈다. 더 놀라운 건 계절에 따라 몸이 스스로를 조절한다는 사실이다. 여름이면 더 빨리 깨어나고, 겨울이면 조용히 힘을 아낀다. 마치 자연의 리듬에 맞춰 내 몸도 스스로 조율되고 있는 것처럼. 농사는 나에게 몸을 회복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었다. 식생활도 바뀌었다.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채소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제철 음식을 먹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 땐 냉장고 속에서 꺼내 먹는 습관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밭에서 나는 걸 먼저 생각하게 된다. 바질이 자라면 페스토를 만들고, 상추가 많아지면 매일 아침 샐러드를 먹는다. 냉동식품은 손에 닿을 일도 없고, 가공식품의 조미료 맛이 점점 낯설어졌다. 이렇게 식단이 바뀌니 소화가 편해졌고, 속도 가볍다. 특히 겨울에는 땅속에서 캐낸 무와 당근, 시래기 등을 주로 먹는다. 별다른 보약을 먹지 않아도 피로가 덜 쌓이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내 몸이 토양처럼 순환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필요 없는 것은 빠르게 배출되고, 필요한 것은 제때 흡수되는 체계. 의도한 것이 아닌데도, 농사 자체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줬다.
건강검진에서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늘 고지혈증 경계였던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졌고, 혈압도 안정됐다. 무엇보다 의사가 한마디 했다. “최근 생활에 변화가 있으셨나요? 몸이 되게 잘 관리되고 있어요.” 나는 농사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몸이 대답하고 있다는 게 묘하게 뿌듯했다. 일하는 시간이 길고, 육체적으로 힘든 건 맞지만, 그 피로가 쌓이는 피로가 아니라 ‘사용되는’ 피로라는 걸 느낀다. 몸을 쓸수록 가벼워지고, 움직일수록 더 오래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는 어떤 운동 프로그램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의 운동이다. 땅 위를 걷고, 삽을 들고, 땀을 흘리는 그 모든 과정이 내 몸과 마음을 동시에 바꿔나가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분명 변화가 있다. 농사를 짓기 전 나는 자주 불면에 시달렸다. 생각이 많았고, 걱정도 많았고, 늘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리에 눕기만 하면 스르르 잠이 온다. 아침에는 시계가 없어도 눈이 떠지고, 낮 동안 햇빛을 온전히 받다 보니 밤에는 자연스럽게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몸으로 해소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도시에서는 말로 풀고, 술로 풀던 스트레스를 이제는 땅에 땀으로 흘려보낸다. 땀을 흘리고 나면 속이 맑아지고, 불안이 빠져나간다. 작물이 자라듯, 나도 그렇게 하루하루 자란다. 실패가 있어도 다음 날 다시 씨를 뿌릴 수 있고, 결과가 안 좋아도 과정을 복기하면 마음이 정리된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자라는 경험. 그것이 지금 내 건강의 본질이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손등엔 햇빛에 그을린 자국이 남았고, 발바닥은 여전히 뜨겁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볍다. 내 몸이 지금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안다. 굳이 체중계나 혈압계를 보지 않아도, 몸이 보내는 신호가 더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농사와 건강은 따로가 아니다. 건강한 땅이 건강한 작물을 키우듯, 건강한 노동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순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