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혼자였다. 작물과 함께 하루를 보냈고, 하우스 안을 몇 바퀴나 돌았으며, 가만히 잎을 매만지다가 멍하니 앉아 한참을 있었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 외로움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도시에서는 번잡함이 싫었고, 사람 사이의 피곤함에 지쳤다. 그래서 조용한 시골, 자연 속 삶을 꿈꾸며 이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작물을 돌보며 사는 삶을 지속하다 보니, 내가 마주해야 할 가장 큰 상대는 '자연'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일이 끝난 저녁, 아무 소리 없는 집에 들어왔을 때, 불을 켜도 따뜻하지 않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적막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혼자 있다는 건, 정말 아무도 나를 모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매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작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땅도, 바람도, 비도, 다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읽고, 맞추고, 뒤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투명해진다. 도시에서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늘 하루 몇 명의 소비자에게 작물을 팔았는지, SNS 후기 하나가 올라왔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대신 내가 오늘 얼마나 정직하게 흙을 만졌는지, 얼마나 집중해서 물을 줬는지, 그게 중요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진실한 삶의 한가운데서 외로움이 찾아온다. 더이상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나는 내 안의 고요와 마주하게 된다. 외로움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물 주던 중 갑자기 손끝이 멈추고, 비닐하우스에 맺힌 이슬을 보다가 괜스레 한숨이 나오고,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던 개 짖는 소리나 바람 소리에 괜히 마음이 휘청인다. 그리고 그런 날엔 유독 가족 생각이 난다. 부모님이 해주던 밥 한 끼, 친구들과 아무 의미 없이 웃던 날들, 도시의 밤거리조차 따뜻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감정 앞에서 허전해지고,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고 싶진 않다. 외로움은 분명 불청객이지만, 때로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선생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하나둘씩 익혀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벽 시간을 내 것처럼 여기는 연습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새벽,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 잎사귀에 맺힌 이슬을 손끝으로 닦아낼 때, 나는 세상 누구보다 충만해진다. 내 숨소리와 작물의 기척만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두 번째는 손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택배 상자마다 소비자에게 짧은 손글씨를 넣는다. “오늘의 바질은 조금 더 진한 햇살을 먹었어요.” “상추가 제법 힘이 생겼습니다. 건강하게 드세요.” 아주 작은 문장이지만, 그것을 쓰는 시간은 내 외로움을 덜어내는 의식과도 같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내가 누군가의 삶에 닿아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음악도 나를 위로해준다. 작업 중에는 늘 클래식이나 재즈를 틀어놓는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빌 에반스의 피아노. 농장 전체가 하나의 큰 음악실이 된 듯한 기분이 들면, 혼자인 시간이 결코 고독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치유해주는 건 작물 자체다. 말없이 자라나는 그 존재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치의 소리 없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잎과 줄기. 내가 거기에 물을 주고, 손을 얹는 행위는 단순한 농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대화고, 치유다. “괜찮아, 오늘도 잘 살아냈구나.”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어느 날은 스스로를 향해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혼자여도 괜찮아. 외로움을 느낄 줄 안다는 건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그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도시에서라면 감히 허락하지 않았을 감정의 깊이. 하지만 농촌에서, 작물 사이에서, 나는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외로움은 불안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자기연민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농부로서, 인간으로서, 나는 그렇게 매일 나를 키워가고 있다. 오늘도 해가 저물었다. 작물은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맞이하고, 나는 조용히 하우스 문을 닫았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 넓은 농장 안에 나를 알아주는 잎들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흙이 있고, 내 마음을 비춰주는 하늘이 있다. 외로움은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 외로움을 끌어안고, 오늘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 언젠가 이 길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외로움마저도 의미 있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