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밭에서 루꼴라 고랑 하나를 통째로 갈아엎었다. 병해가 너무 심하게 퍼졌다. 며칠 전부터 잎에 이상한 반점이 생기더니, 금세 퍼지기 시작했고 잎끝이 마르며 줄기까지 시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부만 손상된 줄 알고 조심스럽게 문제 잎만 골라냈지만, 이미 뿌리까지 병이 퍼진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옆 고랑까지 전염될 위험이 있었기에, 결국 ‘전면 폐기’라는 결정을 내렸다. 밭을 정리하는 동안 마음이 참 복잡했다. 잘 자라던 아이들이었고, 이번에 품질도 좋아 출하 기대를 많이 했던 작물이었다. 그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마치 사람의 장례를 치르듯 조심스럽고 무겁게 작업을 이어갔다. 농사를 시작한 이후, 나는 수많은 생명을 키우면서 동시에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매번 멈추게 된다.
작물의 죽음은 소리 없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작은 신호에서 시작된다. 잎의 색이 바뀌거나, 줄기의 강도가 떨어지거나, 뿌리가 흙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하는 느낌.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눈으로, 감각으로 감지하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병을 알아차리지 못해 전면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때는 자책이 컸다. “내가 뭘 잘못했지?” “물을 너무 줬나, 너무 말렸나?” “흙이 산성화됐나?” 이유를 찾느라 밤잠을 설친 적도 많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이유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아무리 환경을 조절하고 최적의 조건을 맞춰도, 생명은 예측대로 자라지 않는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나는 매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고,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씨앗을 뿌릴 수 없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은 작년 여름, 바질 하우스였다. 한창 수확을 앞두고 있었고, 향도 진하고 품질도 좋아 스스로도 기대가 컸던 시기였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후 환기창 일부가 고장 나 내부 습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며칠 사이 곰팡이병이 퍼졌다. 일주일도 안 되어 80% 가까운 바질이 고사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작물의 죽음을 앞에 두고 울었다. 그동안 흘렸던 땀이 떠올랐고, 매일같이 손으로 다듬던 잎들의 감촉이 생각났고, 아침마다 문을 열고 “잘 자랐니?” 하고 건넸던 인사들이 무의미해진 것 같았다. 농사는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런 불일치 속에서 농부는 매번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 죽음을 안고도 다시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서도 내면의 균형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죽은 작물을 치우는 일은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버겁다. 뿌리가 썩은 흙을 뒤엎고, 병든 줄기를 잘라내며 마치 그 아이와 이별을 고하는 느낌이 든다. 한 뿌리, 한 뿌리 손에 쥘 때마다 “미안해. 잘 지켜주지 못해서.”라는 말을 속으로 한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식물한테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에게 작물은 그저 상품이 아니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온 존재였다. 그 존재와의 이별은 단지 손실이 아니라 감정의 단절이기도 하다. 죽음을 정리한다는 건, 그런 감정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묻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묻음 위에 새로운 시작이 자란다. 땅을 다시 고르고, 퇴비를 뿌리고, 물을 적셔 흙을 살리는 일. 그렇게 나는 다시 생명을 준비한다. 죽음을 정리하지 않으면 새로운 씨앗은 뿌리내릴 수 없다. 오늘 밭을 다 정리한 뒤, 비어 있는 고랑을 멍하니 바라봤다. 흙은 아직 젖어 있었고, 잎이 썩은 냄새가 살짝 코끝을 스쳤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고맙기도 했다. 내 손으로 살리지 못한 생명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걸 남겨주었다. 관리의 중요성, 기후 대응의 민감성, 무엇보다 생명의 무상함. 그리고 동시에 ‘이래서 농사를 그만둘 수 없구나’라는 묘한 끌림까지. 생명을 키우는 일이란, 결국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을 마주할 수 있어야 진짜 생명을 소중히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농부는 매일 생사 앞에 선 사람이다. 씨를 뿌릴 때는 기도를 하고, 고사를 정리할 때는 묵념을 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 다음을 준비한다. 해질 무렵, 빈 고랑 옆에 바질 모종을 몇 개 옮겨심었다. 아직 온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그렇게 시작해보려 한다. 이번엔 더 천천히, 더 조심스럽게, 더 많이 말을 걸면서 키워볼 생각이다. 농장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흐름의 한 부분이다. 정리하고, 돌아보고, 다시 채우는 일. 그 과정이 반복되며 나도 점점 농부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 계절이, 조용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