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우스 안을 한참 동안 걸었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구석진 곳, 잎 뒷면을 들춰보니 벌써 벌레의 흔적이 보였다. 작은 구멍들, 잎맥을 따라 갈라진 상처들, 그리고 군데군데 붙어 있는 흰가루처럼 보이는 벌레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무리 예방해도, 병해충은 슬그머니 파고든다.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때다. 모든 정성과 시간, 노력이 고스란히 깨어질까 두려운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손은 쉬지 않았다. 재빨리 병든 잎을 따내고, 피해가 심한 줄은 따로 표시해두었다.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아마 수년간 겪어온 위기 속에서 익숙해진 반사신경일 것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병해충을 너무 얕봤다. 유기농 재배를 고집했기에 화학약품은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 방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병해충 관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절실했다. 그런데 실상은 책이나 강의에서 배운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매일같이 밭을 돌아다니며 눈으로, 손으로, 코로 감지해야 했다. 해충의 흔적은 작고 교묘했다. 한순간 방심하면 순식간에 번졌다. 한 여름밤, 한낮보다 더한 습기 속에서 곰팡이병이 하우스 전체를 덮은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며칠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우스에 누워 지냈다. 그렇게 망가진 작물을 바라보며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자문했던 날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 발견한 건 주로 진딧물과 온실가루이였다. 둘 다 생명력 강하고 번식 속도가 빠른 녀석들이다. 특히 온실가루이는 습한 날씨를 좋아한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이어졌으니, 번식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대응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천적 투입, 유기농 방제제 살포, 수시로 잎 관리.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마음 한쪽에서는 또 절망이 꿈틀거렸다. ‘또 시작인가.’ 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병해충은 단순히 농작물만 공격하는 게 아니다. 농부의 멘탈을 먼저 무너뜨린다. 매일 돌보고 아끼던 작물들이 하루아침에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허탈함과 분노와 자책이 뒤엉켜버린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그걸 이 병해충들과 싸워오면서 배웠다. 포기하면 끝이다. 뿌리 썩은 상추를 뽑아낼 때, 잎이 시든 청경채를 솎아낼 때, 나는 매번 조금씩 성장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손을 움직였다. 오늘도 똑같다. 한 장 한 장 병든 잎을 제거하고, 살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햇살과 공기를 보낼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줬다. 방제제를 뿌릴 때도, 억지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했다. 아직 살아남은 작물들이 있다는 것, 아직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에. 누군가는 농사가 자연과 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농사는 자연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병해충은 자연의 일부다. 그들도 살아야 한다. 문제는 균형이다. 자연이 균형을 잃었을 때, 인간이 욕심을 부렸을 때, 병해충이 폭발적으로 번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 농장을 먼저 돌아본다. 통풍은 잘 되는지, 물 주기는 과하지 않았는지, 토양의 영양 상태는 균형을 이루는지. 병해충과의 싸움은 결국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성급하지 않고, 얼마나 섬세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오늘은 농장 구석구석을 돌며 방제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하우스 문을 닫고 나오는 길, 빗방울 몇 개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 냄새에 비가 다시 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의외로 고요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농사고, 농부라는 걸 이젠 알기에. 병해충은 오늘도 있을 것이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매일 땅을 밟고, 잎을 어루만지고,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답을 찾아갈 것이다. 병든 잎을 따내면서 다짐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하는 거다.' 농사는 실패의 연속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성공을 믿는 사람들의 일이다. 오늘 나는 비록 진딧물 몇 마리에게 한 수 물렸지만, 하우스 전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농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이른 새벽에 하우스 문을 열 것이고, 또다시 작물들과 대화할 것이다. 아프지 않았냐고, 괜찮냐고, 오늘은 더 강해졌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으며, 다시 손을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