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스마트팜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알림이 떴다. 온실 내부 습도가 평소보다 높다는 경고였다. 앱을 열자 바로 온도와 습도, 조도,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손가락 하나로 환기창을 열고, 미세하게 펌프 설정값을 조정했다. 단 1분도 되지 않아 습도 그래프가 안정 구간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바람이 이상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직접 하우스로 달려가 물을 뿌리고 바람을 돌려야 했을 텐데, 지금은 앉은 자리에서 대부분의 일이 해결된다. 정말 놀라운 시대다.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농사를 이렇게 ‘앱 하나로’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기계가 대신해주는 이 편리함 속에서도 나는 자주 망설인다. 수치가 안정되었다고 해서 작물이 건강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온도가 적정하다고 해서 그 뿌리가 안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내가 정말 이해한 걸까. 스마트팜은 ‘최적의 수치’를 제공해주지만, 땅을 직접 만졌을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촉감, 작물 잎을 들춰봤을 때 올라오는 향기, 뿌리 근처의 작은 숨소리 같은 건 수치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하우스를 돌며 손으로 만져본다. 눈으로 확인하고, 작물에게 말을 건다. “오늘 괜찮았니?” 그러면 수치로는 보이지 않던 미묘한 신호들이 보인다. 잎 끝의 아주 작은 마름, 빛을 받는 방향으로 살짝 기울어진 줄기, 뿌리 아래의 수분 유지 상태. 기술은 완벽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마트팜을 처음 도입했을 때 나는 들떠 있었다. 재배 조건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병해를 예측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매료됐다. 박사 과정 내내 연구했던 알고리즘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는 일은 내게 있어 실험실 밖의 진짜 실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데이터가 완벽해도, 농사는 ‘감정’과 ‘감각’을 빼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특히 날씨처럼 변덕스러운 조건 아래에선, 인간의 직관이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습도 센서가 정상이라고 해도, 바람 결이 바뀐 걸 감지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햇살이 지나치게 강하게 들어올 때, 작물의 표정을 먼저 알아채는 것도 결국 농부의 눈이다.
기계는 실패를 기록해주지만, 실패의 원인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작물이 자라지 않았던 날, 나는 하우스 한복판에 주저앉아 모니터링 화면을 한참 들여다본 적이 있다. 수치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작물은 성장을 멈췄다. 결국 그건 수치로는 포착되지 않는 미세한 병해 초기 증상이었고, 땅 깊숙이 축적된 미량염류 때문이었다. 스마트팜이 알려주지 못했던 그 작은 문제를 손끝의 감각이, 내 코가 먼저 알았다. 이 경험을 겪고 난 뒤부터 나는 기술을 ‘도구’로 바라보게 됐다. 중심은 여전히 ‘사람’이며, 작물을 마주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이제는 스마트팜 시스템이 없으면 농장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 작물 생육 일지, 수확 예측, 병해충 알림,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으니 노동 강도는 분명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관심’이 멀어질까 봐 걱정될 때도 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작물들이, 기계의 리듬에만 맞춰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 그날의 데이터를 확인한 뒤엔 꼭 하우스를 한 바퀴 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살피고, 입으로 말을 건넨다. 이것이야말로 스마트팜 시대에 농부가 잃지 말아야 할 마지막 ‘온기’라고 믿는다.
스마트팜은 농사의 미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노동 강도를 줄이며, 안정적인 생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간적인 감각과 감성을 가진 농부가 ‘제어’하고 ‘보완’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완벽하지만, 자연은 완벽하지 않다. 땅은 늘 예상에서 벗어나고, 생명은 늘 통제 밖에서 움직인다. 그 혼란과 예외 속에서 농부의 직관과 마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수치가 아니라 작물의 상태를 다시 떠올렸다. 비록 화면은 멀쩡했지만, 나는 하우스로 향했다. 기계보다 내 감각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결국 ‘기술과 감성의 조화’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는 데이터와 수치를 신뢰하지만, 동시에 내 손끝에 닿는 감촉, 잎의 색, 뿌리의 향기를 신뢰한다. 이 두 가지가 만날 때 비로소 진짜 ‘살아 있는 농사’가 된다고 믿는다. 오늘도 기계는 정확하게 작동했고, 나는 그 정밀함에 감사하면서도, 그 위에 더해지는 ‘사람의 감각’을 더 소중히 여겼다. 스마트팜은 내 파트너지만, 작물의 주치의는 아직도 내 두 손이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오늘도 다시 하우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