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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심은 상추가 알려준 '작은 시작의 힘'

by 519kiki 2025. 4. 29.

오늘은 상추를 심었다. 단지 상추 몇 포기를 심었을 뿐인데, 이상할 만큼 마음이 충만하다. 아침 5시, 해가 막 떠오르려는 시각에 농장에 나왔다. 아직 공기에는 찬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새벽 안개가 밭고랑 위를 부드럽게 스치고, 풀잎에서는 맺힌 이슬방울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작물은 환경을 속이지 않는다. 기온, 습도, 토양의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란다. 그래서 농부는 늘 하늘을 보고, 땅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는 법이다. 오늘 상추를 심는 건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자라나서, 한 달 후에는 누구의 밥상에 올라 누군가의 하루를 채워줄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내 손끝에서 시작되는 이 일이 얼마나 무거우면서도 숭고한지 실감하게 된다. 텃밭 한 귀퉁이에 미리 갈아놓은 땅이 있다. 이곳은 내 농장의 입구,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지나치는 곳이다. 일부러 상추를 심기로 한 건 아니다. 원래는 이 구역에 더 상품성이 높은 작물을 넣으려 했었다. 하지만 요즘 농장 운영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팔기 위해서만 농사를 지으면, 밭도, 작물도, 심지어 나 자신도 삭막해진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나를 위해, 농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친근한 상추를 심기로 했다. 손바닥만 한 모종을 조심스럽게 심으면서, 이 조그만 생명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씨앗 하나가 땅속에서 터지고, 뿌리가 뻗고, 잎이 퍼지는 그 일련의 과정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신비다. 농부는 다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돕는 존재일 뿐이다.

상추-사진

 

고개를 숙이고 모종을 하나하나 심을 때마다, 머릿속에 문득문득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귀농했을 때의 막막함, 첫 작물의 실패, 첫 장마 때 무너진 밭, 그리고 첫 수확의 눈물겨운 기쁨까지. 나는 땅을 알지 못했다. 씨앗을 심으면 저절로 자랄 줄 알았고, 비료를 뿌리면 건강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작물은 다르게 반응했다. 땅을 사랑하지 않으면, 땀을 믿지 않으면, 결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수많은 실패와 좌절 끝에, 비로소 나는 농사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나갔다. 상추를 심으면서,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을 끌어안았다. 지금 이 작은 모종 하나는, 내가 지난 수년 동안 흘린 땀방울과 절망, 그리고 다시 일어섰던 수백 번의 순간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그 힘든 농사를 계속하느냐고. 대기업에 다니던 과거,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작은 시작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심은 이 상추처럼. 처음 씨앗을 뿌릴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빈 땅만 덩그러니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햇살을 받고, 비를 맞고, 뿌리를 내리다 보면, 어느새 초록빛 잎들이 세상을 덮는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땅이 주는 답은 느리지만, 반드시 돌아온다.

 

상추를 다 심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벌써 아침 해가 농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손바닥은 흙먼지로 까맣게 물들었지만, 기분은 맑았다. 내 옆에는 오늘 심은 상추 모종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각각의 모종은 아직 작고 연약했지만, 그 안에는 끝없이 뻗어 나갈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다. 이 작은 시작이 언젠가 큰 변화를 만들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농업이라는 건 거대한 혁신이나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매일 땅에 손을 대고, 작물과 눈을 맞추고, 비바람을 견디며 지켜내는 작은 노력들의 집합이다. 그 조그마한 씨앗을 심는 순간, 나 역시 다시 시작한다. 오늘 심은 상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잎을 펼칠 것이다. 그 잎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한 사람의 성실함과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시간의 결정체다. 그래서 나는 이 작물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시 고객에게, 세상으로 흘러간다. 정성껏 키운 작물을 먹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손길이 담겨 있는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상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농사는 실패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심어도 안 되고, 키워도 병들고, 출하할 때 가격이 폭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 심은 이 상추처럼, 매번 작은 시작이 내게 희망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농부는 작물이 자라지 않는 동안에도 포기하지 않고 돌본다. 마치 언젠가 올 봄을 믿는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농부는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오늘 심은 상추가 내게 가르쳐준 것도 그것이다. 세상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봄을 이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봄이 결국 나를 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린다는 것. 흙 묻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 생각했다. 작은 시작을 무시하지 말자. 오늘 심은 이 상추처럼, 언젠가 이 작은 시작이 내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작은 모종 하나에 내 희망을 심었다. 상추 한 포기에서 시작된 오늘의 하루가 언젠가 누군가의 웃음이 되고, 건강이 되고, 기억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농사, 오늘의 상추, 오늘의 나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