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올해 첫 파종을 했다.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시작을, 드디어 손으로 옮겼다. 겨울 내내 얼어붙은 땅을 바라보며,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해를 느끼며,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없이 많은 씨앗을 뿌려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진짜였다. 땅을 갈고, 줄을 긋고, 손끝으로 씨앗을 하나씩 놓아두는 그 일련의 과정이, 내게는 단순한 농사일이 아니라 새해의 첫 의식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작은 땅 위에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선언.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이른 아침, 기온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하늘은 맑았다. 입춘이 지났으니 봄은 멀지 않았다. 그래도 땅은 아직 차다. 삽을 들고 땅을 들춰보니, 서늘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생명의 냄새를 맡았다. 겨울을 지나며 푹 쉬었던 흙은 은은한 습기와 함께 특유의 깊고 진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스쳤다. 이게 바로 내가 다시 농사를 시작하는 이유구나. 다시 이 냄새를 맡고 싶어서, 다시 이 감촉을 느끼고 싶어서 나는 매해 이곳으로 돌아온다.
밭을 정리하고, 파종 준비를 하며 나는 하나하나 과정을 되새겼다. 씨앗은 올해 내가 새로 준비한 품종이다. 작년보다 저온 발아력이 좋고, 맛도 더 안정적이라고 한다. 물론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땅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파종 전 일주일 동안 토양 pH를 맞추고, 유기질 퇴비를 뿌려 두었다. 단지 작물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아니라, 땅이 올해도 내 수고를 받아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기분으로 돌보고 다듬었다. 농부는 땅을 지배하지 않는다. 땅에게 허락을 구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그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얹었다. 파종기는 편리하지만, 나는 첫 파종만큼은 손으로 한다. 손끝으로 흙의 결을 느끼며, 씨앗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는다. 줄 긋기, 물 주기, 씨앗 놓기, 덮기. 반복되는 동작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명상에 가까운 시간이다. 마음은 점점 고요해지고, 호흡은 깊어진다. 손으로 흙을 감싸 쥐고, 씨앗을 넣는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전율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그 느낌. 아직은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내 손으로 출발선 하나를 만들어주는 그 순간의 감동. 작고 미약한 생명 하나가 이제 곧 어딘가를 향해 나아갈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시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숨조차 조심스레 쉰다. 파종을 하다 말고, 나는 잠시 허리를 폈다. 끝없이 펼쳐진 밭. 이 밭을 나 혼자 채워가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책임감이 따라온다. 이 밭에서 자라나는 것은 단지 작물만이 아니다. 나의 시간, 노력, 기다림, 실수, 그리고 회복까지 전부다. 그래서 매해 첫 파종은 내게 각별하다. 씨앗은 매년 다를 수 있지만, 땅은 같은 자리에서 내 손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늘 같은 마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다시 만나 반가운 친구처럼, 흙과 나눈 짧은 인사를 시작으로 한 해가 열리는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나고, 파종을 마쳤다. 작고 고운 흙이 덮인 밭고랑 위로 미세하게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지나가며 흙 표면을 살짝 흔드는 모습이 마치 씨앗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부탁해. 올해도 잘 자라줘.'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 인사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하지만, 나는 씨앗이 알고 있다고 믿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배운 건, 말 없는 존재와 대화하는 법이었다. 흙과 바람과 햇살과 눈빛으로 대화하는 법. 오늘 나는 그 대화를 다시 시작한 셈이다. 저녁 무렵, 하우스를 정리하면서 오늘 심은 씨앗들이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푸르게 자라날 작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듯, 나는 이 밭을 보며 한 달 뒤의 초록빛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곧 나의 동력이 된다. 농사는 상상으로 시작해서, 땀으로 이어지고, 기다림으로 결실을 맺는 여정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여정의 첫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는 흙이 여전히 묻어 있었고, 몸은 뻐근했지만 마음은 가볍고 단단했다. 해마다 이 시간은 새롭고, 또 깊다. 단순히 파종만 했을 뿐인데, 어쩌면 나는 오늘 다시 살아났는지도 모르겠다. 새싹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 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천천히 하라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올해도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안다. 오늘 땅을 만졌던 이 전율이, 올 한 해를 버티게 해줄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거라는 걸.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작은 씨앗 하나에 내 한 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