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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의 싸움에서 배운 ‘포기와 수용의 기술’

by 519kiki 2025. 5. 22.

오늘도 잡초를 뽑았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이른 아침, 물기 머금은 흙을 맨손으로 헤집고 앉아 한 포기씩 조심스럽게 뽑았다. 아직 이슬이 남아 손끝이 축축했지만, 이 시간대가 가장 잡초가 잘 뽑히는 때다. 줄기를 당기면 뽑히기도 하지만, 뿌리를 남기고 끊기기 일쑤라 더 집중해야 한다. 몇 해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잡초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 어떤 작물보다 빠르게, 강하게, 거침없이 자란다. 농부 입장에서 보면 철저히 ‘적’이지만,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는 존경심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의 싸움 속에서 오히려 내 삶을 배우고 있다. 모든 걸 통제하려 들던 내 태도가 점차 바뀌었고, 지금은 때때로 포기하고, 때때로 수용하면서 그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잡초는 ‘무조건 제거 대상’이었다.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작물과 양분을 경쟁하며, 병해충의 온상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멀칭 비닐을 깔고, 제초망을 치고, 빈틈없이 방제했다. 한 줄기도 허락하지 않으려 애썼고,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낫을 들고 밭을 돌며 뽑았다. 하지만 그렇게 전력을 다해도 잡초는 늘 ‘먼저’ 올라왔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잎을 틔우고, 며칠만 눈을 돌려도 고랑 사이를 가득 채운다. 그 끈질긴 생명력에 지치기도 하고, 때론 분노도 느꼈다. '도대체 이 땅은 누구 편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나는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말 이 싸움은 이길 수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겨야만 하는 걸까?

갈색-토양에-녹색-새싹

 

어느 여름날, 무릎이 성하지 않아 제대로 뽑지 못한 잡초가 자라 상추밭 절반을 덮었던 적이 있다. 나는 자책했고, 몇 날 며칠을 그것들과 싸웠다. 그러다 문득 한 아이가 농장에 놀러와 이렇게 말했다. “이 풀도 예쁜데요? 상추 옆에 같이 있으니까 멋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없게 웃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잡초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물론 작물 생육에 방해되는 건 여전히 맞지만, 모든 잡초가 악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잡초는 토양 유실을 막고, 어떤 잡초는 해충을 끌어들여 작물을 보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 땅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이 존재할 이유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잡초 관리’라는 말을 ‘잡초 조율’로 바꿔 쓰고 있다.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작물이 자라는 데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만 조절하는 것. 일부 구역엔 아예 풀을 남겨두고, 토양의 유기물 순환을 유도하기도 한다. 한 켠엔 일부러 제초하지 않고 야생화를 유도해 벌을 불러들인다. 물론 이런 방식은 시간도, 노동도 더 들지만, 내 농장의 생태계는 더 풍성해졌다. 그리고 그만큼 내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모든 걸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태도로 바뀐 것이다. 농부로서의 철학이, 잡초와의 싸움 속에서 자란 셈이다. 

 

잡초를 대하면서 나는 ‘포기’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그것은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딘가 부족해 보여도, 그 안에서 조화를 만들어가는 것. 농사는 항상 예외와 변수로 가득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오히려 그 안에서의 유연함이 중요하다. 잡초가 알려준 교훈은 바로 그것이었다.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 정복이 아니라 조화.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생각을 밭에서 실천하고 있다. 잡초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지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 대신 ‘이만하면 괜찮아’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내가 있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성숙이다. 오늘도 몇 포기의 잡초는 그냥 뒀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 자리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뿌리를 깊게 내린 그 생명에게 내 공간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내가 잡초를 수용하듯, 나 역시 나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는 땅을 일구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갈아엎고 다시 심는 일이다. 잡초는 그 땅의 거울이고, 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매일 같이 뽑고 또 자라는 그 존재를 통해, 나는 오늘도 농부로, 사람으로 조금씩 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