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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사 속 미생물과의 공생(눈에 보이지 않는 파트너)

by 519kiki 2025. 5. 23.

오늘은 토양 속 미생물 활성도를 측정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바실러스균과 유산균, 광합성 세균을 혼합한 미생물제를 밭에 뿌리기 시작했고, 흙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토양을 그저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그릇'쯤으로만 여겼다. 물을 머금고, 양분을 공급하며, 뿌리를 지지해주는 물리적인 공간. 하지만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흙을 바라보게 되었다. 토양은 하나의 '생명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생물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루에도 수백억 마리씩 살아 움직이는 그 미세한 존재들이야말로 내 농사의 진짜 파트너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 믿는다.

넓은-농장에서-수확하고-있는-트랙터

 

처음엔 솔직히 의심도 있었다. 미생물제를 뿌리면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가격도 만만치 않고, 효과가 눈에 띄지 않으면 괜히 시간과 자금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냄새’였다. 발효가 잘 된 미생물제를 토양에 주기적으로 살포하면, 몇 주 후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확연히 달라진다. 퀴퀴하고 눅진한 흙냄새가 아니라, 따뜻하고 뭔가 살아있는 느낌의 향기랄까. 그리고 그 냄새는 대개 ‘건강한 흙’의 첫 번째 신호다. 뿌리가 숨 쉬고, 이끼가 슬며시 생기며, 잡초마저 윤기 있게 자란다. 겉보기엔 미미한 변화지만, 농부의 감각으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 이 흙은 살아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지난해 여름, 병해가 심했던 바질밭에서였다. 잎마름병이 퍼지기 시작했고, 습도가 높은 날씨에 뿌리까지 무르기 시작했다. 방제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농약을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미생물제를 뿌리기 시작했다. 유산균과 바실러스균, 그리고 자가 배양한 광합성세균을 정해진 비율대로 희석해 매일 물에 섞어 관주했다. 처음 일주일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자, 뿌리 근처의 흙 색이 달라지고,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면서 바질이 다시 중심을 세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잎의 향이 다시 짙어졌다.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그날 이후, 나는 미생물을 단순한 보조재가 아니라, 농장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흙은 미생물과 함께 살아간다. 작물은 뿌리를 통해 미세하게 당분을 흘려보내고, 그걸 먹고 사는 미생물은 다시 뿌리에 필요한 양분을 분해해서 되돌려준다. 이 과정을 우리는 ‘공생’이라 부른다. 인간으로 따지면 누군가와 하루 종일 서로 음식을 나눠 먹는 셈이다. 이 섬세한 균형 속에서 건강한 농장이 유지된다. 그런데 화학비료와 살균제를 무분별하게 쓰기 시작하면, 그 균형은 무너진다. 병도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복되고, 흙은 피로해지고, 작물은 약해진다. 나는 이런 악순환을 몸소 겪었다. 그래서 지금은 미생물이 살아 있는 흙을 만들기 위해 물과 시간,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실제로 내 작물을 지켜준 ‘경험’이다.

 

미생물 농법은 시간이 걸린다. 효과가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기다림의 끝에는 분명한 보상이 있다. 작물의 잎은 더욱 깊은 녹색을 띠고, 뿌리는 병에 강해지며, 수확량보다도 ‘품질’에서 큰 차이가 난다. 실제로 시장에 나가는 바질이나 상추, 케일을 보고 소비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냄새가 진하다”, “씹는 느낌이 다르다”, “물에 씻어도 숨이 죽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아, 미생물들이 열일했구나.’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작물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변화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 영양을 얻는다. 그리고 그 생명의 시작은 언제나 ‘흙 속’이다. 요즘 나는 미생물 배양도 직접 하고 있다. EM 원액을 구입해 당밀과 쌀뜨물, 유산균을 섞고, 따뜻한 곳에서 숙성시키면 향긋한 발효액이 만들어진다. 처음엔 그 냄새가 어색했지만, 이젠 하루라도 그 향을 맡지 않으면 허전하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서 올라오는 그 미묘한 향기 속에는 ‘살아 있음’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걸 물에 타서 뿌리며, 나는 작물에게 말한다. “이건 내 손으로 만든 생명이야. 잘 받아줘.” 그 말에 작물은 침묵하지만, 며칠 후 잎의 빛깔로 대답한다. 고맙다고, 따뜻하다고, 다시 힘을 낸다고. 오늘도 나는 흙 한 줌을 손에 쥐었다.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이 있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미세한 움직임들. 그 보이지 않는 생명체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점점 더 겸손해지고, 더 신중해진다. 농사는 눈에 보이는 작물만 키우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의 미생물은 나의 선생이자 동료, 그리고 가장 정직한 농장의 조력자다. 그렇게 나는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