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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폭염 속 작물과 함께 견뎌낸 7월 이야기

by 519kiki 2025. 5. 14.

올해 7월은 정말 유난히 더웠다. 해마다 더워진다고 하지만, 올해는 단순한 더위가 아니었다. 기온은 36도까지 치솟았고, 하우스 안 체감 온도는 45도에 가까웠다. 농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피부는 쩍쩍 갈라졌다. 처음엔 이 정도쯤이야 버틸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폭염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사람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속이 타는 건 작물들이었다. 상추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잎 끝이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바질은 햇볕을 너무 받아 엽록소가 파괴되며 황색 반점이 생겨났다. 한 주만에 밭 전체가 시들고 휘어지고 말라버리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는 건 참담했다. 

한여름-옥수수-사진

 

그럼에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더위는 어떻게든 견뎌야 했고, 작물도, 농부도 포기할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뜨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겼다. 햇살이 뜨기 전,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물을 주고 통풍을 최대한 돌려야 했다. 고온에 시달린 작물은 낮보다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을 더 좋아했다. 낮에는 그저 버티기만 할 뿐, 자라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시간대에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한낮엔 체력이 버티질 못했다. 하우스 안에서 10분 이상 작업하면 땀이 비처럼 쏟아졌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럴 땐 억지로라도 나와서 물을 마시고 트럭 그늘 밑에 앉아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작물도 끝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견뎌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작물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일이었다. 스마트팜 시스템을 통해 온습도와 조도, CO₂ 농도를 체크했지만, 이상하게도 수치가 정상이더라도 작물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이유를 몰라 며칠을 고민하다, 직접 땅을 파고 뿌리 상태를 점검해봤다. 알고 보니 낮에는 증산작용이 멈춰버리고, 뿌리 부근에 열이 갇혀 있었다. 복합적인 스트레스였다. 결국 그때부터는 바닥에 차광망을 깔고, 하우스 벽면에 추가로 반사필름을 붙이고, 하루 두 번씩 점적관수를 나눠서 했다. 단순히 물을 주는 게 아니라, 작물이 흡수할 수 있는 시간대에 맞춰 흙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정답이었던 건 아니다. 분명 일부 작물은 실패했다. 일찍 심은 루꼴라는 전량 폐기해야 했고, 일부 상추 품종은 아예 작형에서 제외해야 했다. 그러나 남은 작물들은 버텼다. 그것도 아주 끈질기게. 바질은 한 번 노랗게 변했다가, 다시 새잎을 내기 시작했다. 상추는 잎이 작아졌지만, 의외로 당도는 올라갔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이 아이들의 변화에 눈을 떼지 않았다. 언제든 쓰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녀석들이었다.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이 여름을,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7월의 중순이 지나자, 하우스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자동 환기창을 다시 세팅하고, 미스트 분무기를 새로 달고, 일조량을 기록해가며 차광망 각도를 수시로 바꿨다. 농사는 기술도 감각도 결국 ‘집요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내가 한 걸음 느리면 작물은 두 걸음 먼저 쓰러진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일 작물과 눈을 마주치며 버텼다. 주변 농가들에서도 피해가 속출했다. 어떤 농가는 정식한 지 일주일 만에 전체 작물을 갈아엎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남아 있는 내 작물들에 더 미안했고, 동시에 더 감사했다. 폭염 속에서 농장을 버티는 일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다. 나는 이 시기에 농사꾼이면서 동시에 기상 관측자이자 엔지니어이자 응급 구조자였다. 작물에게 쉴 틈을 주는 동시에, 나 자신도 무너지지 않도록 조율해야 했다. 어느 날, 물 주고 있던 중에 한 고객에게서 톡톡 메시지가 왔다. “요즘처럼 더운 날, 농장 운영하시느라 고생 많으세요. 그래도 상추가 정말 맛있어요.” 그 한 줄에 가슴이 뭉클했다. 땀에 젖은 옷, 흙탕물 튄 신발, 타들어가는 하우스 천막 아래에서 나는 문득 그 메시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한참을 웃었다. 그건 내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그늘이었고, 가장 시원한 물 한 잔이었다. 7월의 마지막 날, 새벽 5시에 농장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여전히 덥지만, 어딘가 모르게 숨 쉴 틈이 있었다. 작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돋아난 잎이 더 두꺼워졌고, 뿌리 주변의 흙은 단단하고 촉촉했다. 한 달 전 그 지옥 같던 더위 속에서도, 이들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 역시 살아남았다. 오늘은 작물 하나하나에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누가 보면 웃을지 몰라도,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이 여름을 견딘 모두에게, 농장 전체에 고개를 숙였다. 농사는 결국 ‘버티는 자의 기록’이란 걸, 나는 이 폭염 속에서 뼈저리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