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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에서 새싹을 살려낸 겨울 농사의 기록

by 519kiki 2025. 5. 7.

겨울 농사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한파가 몰아칠 때면 땅도, 작물도, 그리고 농부의 마음마저 얼어붙는다. 오늘은 그 겨울, 내가 새싹을 살리기 위해 보낸 가장 긴 하루를 기록해두고 싶다. 새벽 4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하우스 온도 알림이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새벽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는 문자.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벌떡 일어나 두터운 옷을 껴입고, 부랴부랴 농장으로 달려갔다. 바람은 날카롭게 살을 에볐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매서운 냉기가 얼굴을 때렸고,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허옇게 퍼졌다. 길가에 얼어붙은 논과 밭을 지나면서 불길한 예감이 커졌다. 오늘만큼은 제발 무사하길,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하우스에 도착하자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손이 얼어붙을 것 같았지만, 지체할 틈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가운 공기가 하우스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습도는 바닥을 쳤고, 새싹들의 잎은 축 처져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아침 해가 뜨기 전 다 얼어버릴 게 뻔했다. 머리가 하얘졌지만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난방기를 최대로 올리고, 보조 열풍기도 연결했다. 하우스 안에 쌓아두었던 보온커버를 끌어와 새싹 트레이를 하나하나 덮기 시작했다. 손끝은 곱아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입술은 저절로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지난 두 달간 땀과 정성으로 키운 새싹들이었다. 아직 어리고 여린 이 생명들을 두고 물러설 수 없었다.

새싹-사진

발로 흙을 차면서 비닐을 고정하고, 손바닥으로 트레이를 감싸면서, 눈물인지 찬바람 탓인지 모를 것이 눈가를 훔쳤다. 농사는 항상 그렇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농부는 그 위기 앞에서 매번 스스로를 시험당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포기할 거냐, 끝까지 지킬 거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추웠지만,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다. 보온커버를 씌운 뒤엔, 하우스 안에 물을 뿌려 습도를 올렸다. 급격히 떨어진 습도는 새싹에게 더 치명적이다. 물이 얼지 않게 조심조심 흩뿌렸다. 발목까지 젖어버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하나라도 살리는 게 중요했다. 긴급조치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새벽 6시가 넘었다. 하우스 안은 약간 따뜻해졌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차 안으로 들어가 난로를 켜고 잠시 몸을 녹였다. 바깥은 아직 칠흑 같았다. 피곤함과 긴장이 교차하는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매일 생명을 붙잡는 일이라는 걸. 땅이 주는 은혜만 받는 게 아니라, 때로는 이토록 절박하게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는 걸. 그래서 힘들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걸.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붉은빛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하우스로 향했다. 두 손이 얼어 감각이 없었지만, 발걸음은 자연히 빨라졌다. 보온커버를 살짝 들추어 새싹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대부분 살아있었다. 물론 몇몇은 잎끝이 얼어 있었지만,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다. 손끝으로 새싹을 살짝 만져보았다. 아직 생명이 살아 있었다. 뿌리가 괜찮으면, 잎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작은 잎 하나하나를 쓸어내릴 때 가슴이 벅찼다. 이겨냈구나. 버텨줬구나.

 

곧바로 추가 보온 작업을 했다. 이중 비닐을 보완하고, 트레이 간격을 좁혀 서로 온기를 나누게 했다. 물도 다시 공급했다. 그리고 하우스 한쪽에 작은 온열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농사는 이렇게 끝없는 조정과 응급처치의 연속이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자연은 예측할 수 없고, 그때그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농부는 단단해진다. 추위에 떨던 새싹을 살려낸 오늘도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전 내내 하우스 안에서 머물며 새싹들을 돌봤다. 비닐 너머로 퍼지는 겨울 햇살이 작물 위에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농사는 단순히 땅에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생명과 약속을 새롭게 갱신하는 일이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 지켜내겠다는 약속. 그리고 비록 작은 실패가 있어도, 다시 일어나겠다는 다짐. 오늘 나는 그 약속을 지켜냈다. 작물들도, 나도.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을 봤다. 얼굴은 창백했고, 손등은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이상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작은 새싹 하나하나를 살리기 위해 맞서 싸운 내 모습이, 어느 때보다 농부다웠다. 누군가 농사를 왜 짓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늘을 이야기할 것이다. 한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붙잡기 위해 끝까지 버틴 하루. 그 하루가 나를 농부로 만들었고, 오늘도 나를 살아있게 했다.